4월 중순에 캐나다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3월에 예정 돼있던 수술이 전공의 파업으로 무기한 연기되고 다른 병원으로 가는 우여곡절 끝에 6월에 수술을 받고 6주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캐나다에서 살게 되면서 한국에 갈 때마다 부모님댁에 머물기는 했지만 이번에 오랜시간 부모님댁에서 살다보니 어렸을 때의 감정이 떠올라 불편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도 쭉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부모님이 서로를 아끼고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싸우는 것도 아주 자주 목격했다. 두분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난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결혼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다. 다만 아이는 늘 원했었다. 그러나 과잉보호받는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서 결혼을 통하지 않고 자녀를 가진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내게는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를 입학해서부터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일방적으로 억압을 많이 받았다.) 현재까지도 관계 회복이 안된 상태인데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점은 더 일찍 독립해 나가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와 그토록 관계가 좋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에 노출됐기 때문인데 이번에도 막말에 자주 노출됐고 이번 경험을 계기로 더는 관계 회복을 해보려는 의지조차 상실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과 나의 관계가 자꾸만 오버랩되고 그 지점이 아이를 키우면서 심리적으로 많은 감정과 생각이 들게 한다. 내가 죽도록 혐오했던 내 가족의 부정적인 말들을 내 아이에게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걸 발견할 때 얼마나 괴로운지.. 20~30대에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문제는 거의 원가족의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는 나처럼 인생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 거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기회가 있는 거 같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그걸 떨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내 아이는 화가 나거나 감정에 큰 동요가 와도 그게 오래 가지 않는다. 장점이 많은 아이인데 그게 이 아이의 아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회복탄력성에 대한 이야기든 좀 더 심리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넋두리같이 돼버렸다..
내가 왜 지구 반대편으로 왔을까.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 내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었다. 아마도 원가정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던 무의식의 작용이 아니었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