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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3.02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2
  2. 2024.11.19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 1
  3. 2024.11.19 드디어 주방의 꼴을 갖추다
  4. 2024.09.28 드디어 주방 리노 1
  5. 2024.08.24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정사)
  6. 2024.07.27 캐나다로 돌아왔다 2
  7. 2024.01.17 제빵수업
  8. 2023.12.21 4년 만의 한국행 2
  9. 2023.10.30 새로운 시작 2
  10. 2023.09.13 일을 그만 뒀다

2025년의 첫 두달이 지나갔고 벌써 3월이다.
내가 사는 아틀랜틱 캐나다는 10월 초면 첫 서리가 내리고 11월이면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고 1, 2월이 가장 추운데 촌집으로 이사 온 뒤로 내게는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남편이 매년 단열재를 집에 보충하고 있고 우리의 주 난방 방법은 화목난로인데 그 어느 겨울보다 가장 장작 준비가 잘 된 해였다.
 
여전히 한국인 기준으로는 많이 춥지만 전에 비하면 애틀랜틱 캐나다도 확실히 덜 추워져서 메이플 시럽 시즌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우리 집에서 15분(1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시부모님의 캐빈이 있는데 거기에서 매년 메이플 시럽을 끓인다. 그래서 어제는 지난 달에 지나가버린 발레타인 데이도 함께 축하할 겸 시부모님의 캐빈에 갔다.
메이플 시럽 시즌이 마치고 날이 풀리면 가을까지 쭉 우린 거의 매 주말에 시부모님 캐빈에 가서 식사를 한다.
남편이 육남매 중 넷째라서 캐빈에 가면 남편의 형제들과 자녀들을 거의 만날 수가 있다.
나는 초콜릿 에클레어와 슈를 만들어 가고 시어머니는 점심식사를 준비하셨다. 아이는 사촌들과 하루종일 즐겁게 놀았다.
내가 사는 뉴브런즈윅주는 주 전체가 시골이라 남편을 제외하고는 시부모님과 조카 애들도 에클레어와 슈를 처음 본단다. 그래도 몇개씩 맛있게 먹어줘서 정말 뿌듯했다.
 
해가 지고 딸 아이와 7학년인 조카 아이랑 같이 캐빈을 걸어 나오는데 조카 아이가 오징어게임 시즌2 의 배우들에 대해 물어봤다. T.O.P로 시작해서 임시완을 아주 좋아하는 눈치였다. 자기 반 아이들이 전부 임시완을 좋아한다고 한다.
자꾸만 캐릭터로 얘기를 안하고 참가번호로 물어보니 배우 이정재가 맡은 역 외에는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거의 모든 영화를 자막과 함께 보는 게 당연했던 내 세대에서는 지금 이런 현상이 정말 신기하다.
라떼는 한국 컨텐츠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소비되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는데 말이다.
어려서 할리우드에서 영화 찍는 걸 꿈꿨지만 그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번주는 많은 일을 했다.
화요일 하루는 낮에 반짝 따뜻해서 남편은 마당에서 세차를 하고 나는 식탁을 리피니싱했다.
5년을 미뤄온 일이었는데 막상 하니 그렇게 어렵지 않고 나름 재미도 있었다. 일단 상판 윗부분에 기존에 있던 스테인과 탑코트를 전부 벗겨내고 샌딩을 했다.
상판 측면도 반드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태라서 다음 주 중에 따뜻한 날에 마무리할 작정이다.
수요일에는 아침에 일 다녀오고 냉장고가 너무 비어서 읍에 나가서 장도 보고 식탁에 바를 스테인과 탑코트를 사왔다. 김치 담글 배추도 여러 포기 사와서 다음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배추를 절여 종일 김치를 담갔다.
금요일에는 일하러 가기 두 시간 전에 일어나 풀드포크를 만들려고 수요일에 산 돼지고기에 양념 발라 슬로우쿠커에 넣어뒀다.
일요일인 오늘도 새벽 2시에 눈이 떠져 살림 몇가지 하고 나니 아침이 돼버렸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이 일어나서이고 빠르게 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정해진 루틴으로 살아갈 때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1, 2월은 금방 가버린 듯 하고 지난 일주일은 꽤 길었던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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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드라마 킬러였다. 중학생 시절부터 VHS 테이프에 미니시리즈를 매회분 녹화해서 그걸 급우들에게 빌려주기도 했었다. 영화라는 매체를 알게 된 후로는 영화를 더 좋아하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드라마에 등장하는  미남 배우들을 좋아했고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판타지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다. 영화연출로 진로를 결정하고 난 뒤로는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는 게 쿨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명작이라는 영화를 보려고 노력했지만 내 취향은 여전했던 것 같다. 물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나 시대의 아픔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도 좋아하기는 했다. 그러나 너무 어려운 영화들은 십대 또는 이십대초반이었던 그 시절 내게는 잘 맞지 않았다.
 
영화를 전공하고 드라마랑은 완전히 담을 쌓고 지낸 기간이 있었다. 여전히 영화 중에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기는 했다. 서른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에 TV 드라마 PD 시험을 1년간 본 기간도 있었다. 한 방송국 면접에서 면접관으로부터 드라마 많이 보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삼십대라기에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쓸데 없이 정직하던 시절이라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내가 가진 취향보다는 남들 눈에 멋져 보이는 -그게 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뭐가 대체 넘의 눈에 멋져보이는 것일까- 그런 것을 추구했고 2015년도에 진로를 바꾸면서 일주일 60시간 (이상) 근무를 하려니 시간은 없고 일을 그만 두고는 두달간 남미여행을 다녀오고 그 후로는 연애하고 결혼하고 한국에서 살지 않다보니 한국 영화든 한국 드라마를 볼 일이 없었다. 결혼 후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 한국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같은 해 이미 종영한 나의 아저씨를 추천 받아 오랜만에 드라마라는 것을 보게 됐는데 거의 잠을 안자고 이틀만에 끝냈다.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알지 못했던 배우들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인데 나의 아저씨는 그때까지 한번도 아이유의 연기를 보지 못했던 내게 이지은이라는 배우를 발견하게 한 드라마였고, 영화 파주 때부터 캐스팅 하고 싶은 배우 한명만 꼽으라면 늘 일순위였던 배우 이선균을 다시 확인하게 된 드라마였다. 그 뿐만 아니라 배우 한명 한명이 하나같이 그 배역이 되어 시청자 입장에서 몰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새는 정말 감정을 잘 쌓아올리는 작품을 만나기가 너무 어려워졌는데 그런 작품이었다, 단순히 어떤 씬, 어떤 대사가 좋았다가 아니라 극이 전개됨에 따라 보는 이의 감성을 건드리는 그런 작품이었다. 전에는 작품을 볼 때 영화감독이 누군지가 어떤 영화를 볼지를 선택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어서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같은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도 보게 됐는데 같은 이유로 역시 좋았다. 어젯밤부터 왜 때문인지 자꾸만 나의 아저씨가 생각이 나서 아침부터 손디아의 어른을 몇번이고 듣고 끄적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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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열흘쯤 전인 11월 8일에 상부장 위에 스톤 카운터탑을 올렸다.


이 카운터탑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21년 초에 선금 500불을 걸고 예약한 것이었는데 우리가 너무 꾸물대는 바람에 그때 그 물건은 진작에 팔렸고 그때 예약한 것과는 다른 색상, 다른 소재의 카운터탑으로 결과적으로는 내 마음에 더 드는 것으로 설치하게 됐다.

이걸 설치하기까지도 자잘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각설하고 그 누구의 주방에도 다 있는 카운터탑이 없으면 세상 불편한데 이 불편감을 이 집에 들어온 지 3년 6개월을 고스란히 겪고 나서 카운터탑을 설치하니 살림이 세상 편해졌다. 이 편리함에도 금세 익숙해지고 원래 내 주방에는 카운터탑이 늘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카운터탑을 제외하고는 9월말에 코서방 친구가 집으로 돌아간 후 우리 주방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왜 때문인지 헛간에 차려놓은 워크샵에 발을 들여놓게 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하루하루가 바빴다.
게다가 여긴 이미 겨울이라서 작업장을 집안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1년의 반인 긴 겨울 동안에 이 집과 앞집을 고칠 계획이다.

오늘도 사실 주방 하부장 서랍을 몇 개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어젯밤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들이 너무 눈에 거슬려 오늘은 아이옷을 전부 정리할 생각이다.
 
스톤 카운터탑을 설치한 후 가장 행복한 것은 이젠 파이나 빵 심지어 크루아상조차도 만들 수 있는 작업대가 생겼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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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주방 리노  (1) 202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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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한번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싶지만 실제로는 한달에 한번 꼴이 되는 것 같다. 지난 한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8월 마지막 주부터 일을 시작했고 BC 스쿼머시에 사는 친구 부부가 2박 3일 다녀갔고 9월 첫째 주에 애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했다. 같은 주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신랑 친구/지인들이 잔뜩 왔었고 일을 쉬었던 토요일에 애랑 나는 우리집에서 200km 떨어진 지역으로 이사 간 친구 가족을 만나러 갔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방을 고치기 시작했다.

코서방 친구가 8월말경에 우리집에 와서 한달간 머무르다 어제 갔는데 아주 경력이 많은 목수여서 우리 주방에 하부장을 만들어줬다. (그 동안은 상부장은 하나만 있고 하부장은 없는 채로 지내왔다.) 9월 첫주 주말이 지나고 부터 지금 3주째 주방을 고치고 있다. 남편도 나도 지금 시간을 쪼개 바쁘게 지내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살림, 바깥일, 아이 돌보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주방 고치는 일은 한 게 별로 없고 지난주에 처음으로 테이블쏘 작동하는 법에 대해 스승님의 사사를 받았다. 하부장은 스승님이 만들고 나는 상부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하부장에 들어가는 서랍을 하나 같이 만들었다. 테이블쏘를 쓰는 게 처음에 비해 한결 편해졌다. 한옥 짓는 게 꿈인 남편 때문에 한국에서 살았던 마지막 해에 한옥학교를 다닐 때부터 아니 그 훨씬 전부터 목공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목공을 경험하게 돼 인생은 역시 재미있구나 싶다.

지금 이 글도 지난주에 테이블쏘 처음 사용하고 그날밤에 쓰기 시작한 건데 마무리를 못해서 오늘 출근하기 전에 막간을 이용해서 쓰고 있다. 지난주부터 밖에서 일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집 리노베이션을 병행하고 있는데 생각한 것만큼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고치면 그게 쌓여서 성장이 있을 거란 기대를 할 수 있게 됐다. 다음번에는 우리 식구들 눈에만 예뻐 보이는 지금 주방의 상태 사진을 좀 올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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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주방의 꼴을 갖추다  (0)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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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에 캐나다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3월에 예정 돼있던 수술이 전공의 파업으로 무기한 연기되고 다른 병원으로 가는 우여곡절 끝에 6월에 수술을 받고 6주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캐나다에서 살게 되면서 한국에 갈 때마다 부모님댁에 머물기는 했지만 이번에 오랜시간 부모님댁에서 살다보니 어렸을 때의 감정이 떠올라 불편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도 쭉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부모님이 서로를 아끼고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싸우는 것도 아주 자주 목격했다. 두분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난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결혼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다. 다만 아이는 늘 원했었다. 그러나 과잉보호받는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서 결혼을 통하지 않고 자녀를 가진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내게는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를 입학해서부터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일방적으로 억압을 많이 받았다.) 현재까지도 관계 회복이 안된 상태인데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점은 더 일찍 독립해 나가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와 그토록 관계가 좋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에 노출됐기 때문인데 이번에도 막말에 자주 노출됐고 이번 경험을 계기로 더는 관계 회복을 해보려는 의지조차 상실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과 나의 관계가 자꾸만 오버랩되고 그 지점이 아이를 키우면서 심리적으로 많은 감정과 생각이 들게 한다. 내가 죽도록 혐오했던 내 가족의 부정적인 말들을 내 아이에게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걸 발견할 때 얼마나 괴로운지.. 20~30대에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문제는 거의 원가족의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는 나처럼 인생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 거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기회가 있는 거 같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그걸 떨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내 아이는 화가 나거나 감정에 큰 동요가 와도 그게 오래 가지 않는다. 장점이 많은 아이인데 그게 이 아이의 아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회복탄력성에 대한 이야기든 좀 더 심리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넋두리같이 돼버렸다..

내가 왜 지구 반대편으로 왔을까.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 내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었다. 아마도 원가정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던 무의식의 작용이 아니었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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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간 지 거의 8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북반구에서 아마도 한국과 제일 멀지 싶은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뉴브런즈윅(12시간 시차)에 나는 살고 있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가는 여정보다 그 반대 방향이 조금 더 수월해서 인천에서 퀘벡의 몬트리올까지 14시간 정도 비행한 다음 3시간 정도의 스탑오버를 하고 국내선으로 갈아타 뉴브런즈윅까지 1.5시간 정도 비행하는 일정이다. 원래는 18시간 정도 걸리는 일정이지만 에어캐나다는 정시 출발하는 경우가 잘 없어서 이번에도 역시나 비행편 둘 다 지연 출발을 했고 첫 비행부터 목적지의 공항까지 20시간 정도 걸렸다.

오늘 쓰려는 이야기는 몬트리올로 오는 비행에 대한 것이다. 장시간 비행을 할 때 나는 통로쪽 좌석을 선호한다. 남편 없이 아이랑만 비행했기 때문에 나는 통로쪽에 앉고 아이는 가운데 좌석에 앉게 됐다. 창가쪽에 한국인 남자분이 앉아 있었다. 4~5년 전부터 이민을 준비해오다가 실행한 것이라고 했다. 식구들과 몬트리올에 정착할 거라고 했다. 식구들은 8월초에 올건데 먼저 집을 구해 놓기 위해 혼자 가는 거라고 했다.

말이 14시간 비행이지 이 정도의 장거리 비행에서는 영화와 tv시리즈를 봐도 봐도 지루함이 가시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출발했던 지난 비행에서 아직 반도 못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갑갑해지고 숨이 안쉬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이번 비행 때는 비행 내내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고 옆좌석에 앉은 한국분과의 대화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시간이 후딱 가버린 기분이었다. 캐나다에 살게 된 이후로 모국어로 대화 나누는 게 큰 기쁨이다.
두 아이의 아빠라는 그 분은 아이가 내 다리를 베고 누워서 다리를 그 분 다리에 올릴 수 있게 배려해줬고  때마다 아직 열이 나는지 세심하게 물어봐줬다. 에어캐나다의 승무원들도 아이의 열을 식혀줄 작은 수건과 얼음, 해열제를 제공해주고 짬이 날 때마다 아이의 안부를 물어봐줬다. 갬동.. ㅠㅠ

이번 비행 경험으로 에어캐나다에 대한 이미지가 좀 바뀌기도 했다. 7년 정도 오직 에어캐나다만 이용하고 있는데 내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게 아니라서 에어캐나다의 서비스에 항상 불만이 많았는데(악명이 높긴하다.) 이번에 승무원들의 친절하고 사려 깊은 모습에 무척 감동 받았다. 지금도 해열제를 챙겨준 캐나다인 승무원의 얼굴이 가물거린다. 뒷좌석에 아동을 동반한 아시아인 승객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고맙게도 키즈 타이레놀을 건네기도 했다.

아이는 비행 내내 열이 38.6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는데 촌집에 오니 열이 37도대로 떨어졌다. 도착한 날 밤 아이는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 아침에는 열이 더 떨어져 있었다. 다음 글에서 한국에 왜 그렇게 오래 있게 됐는지와 많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쓰게 되겠지만 이번 비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서 배려와 도움을 많이 받은 경험이었다.

두 아이의 아빠라는 한국인 가장의 캐나다 정착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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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의 한국행  (2) 2023.12.21
Posted by nomad_e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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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부터 평일에 매일 하루 4시간씩 발효빵 수업을 듣고 있다. 부모님이 수지로 이사를 하셔서 종로에 있는 제빵학원까지 가는데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이 소요되니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학원에 다녀와 저녁식사를 하면 하루가 끝난다. 9년 전에 학원에서 케이크 데코 과정을 수강할 때 제과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빵은 한번도 다뤄보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살게 되고 몇 가지 시도 끝에 캐나다인들의 주식인 빵을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제빵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지금 학원에서 빵을 배우고 있다. 이 수업은 이달 25일에 끝나고 30일에는 친정 근처에 있는 공방에서 크루아상 1:1 강의를 듣기로 돼있다.

12월에는 독감에 걸리기도 했고 연말 분위기에 조금 들뜨기도 했고 캐나다에서 번아웃이 왔던 걸 회복하기 위해 한 달 잘 쉬었다. 2월 초에는 절친들과 국내로 2박 3일 여행을 가기로 했고 몇 년 간 보지 못한 친구들도 하나씩 만날 것이다. 더 보충해서 들을 강의가 있으면 2월에 좀 더 듣고 3~4월에는 남편, 아이와 여행을 좀 다니고 우리가 사는 곳엔 없는 놀이공원에도 가고 부모님과도 여행을 좀 다니려고 한다.

매주 나의 첫 가게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포스팅하겠다고 한 다짐이 무색하게 아무것도 기록하지도 않고 심지어 학원에서 만든 빵 사진 조차 찍지를 않고 있어서 끄적여봤다. 옆동네에 독일인들이 운영하는 발효빵을 위주로 한 베이커리가 있기 때문에 내 가게에서 발효빵을 판매할 계획은 없지만 빵을 해본 적이 없어서 개념을 알아둬야 할 거 같아서 학원을 다니고 있다.

오늘은 학원에서 뺑 드 깜빠뉴를 만들었다. 잘 알려진 다른 유럽빵은 거의 먹어본 거 같은데 참 많이 들어본 이름인 깜빠뉴는 한번도 먹어보지 않았다. 난 산미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빵은 산미가 있는데도 내 입맛에 맞는다. 내일은 치아바타를 만든다. 매일 있는 수업이라서 발효종을 넣고 반죽을 치고 냉장발효를 한 다음 다음날에 굽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수업에서 강사님이 이론도 많이 알려주시고 여러 발효종을 다룬다. 오늘은 막걸리와 누룩을 이용한 발효종을 만들었고 캄부차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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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2) 2023.10.30
Posted by nomad_e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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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4년 만에 한국에 왔다.
뉴브런즈윅 시간으로 12월 1일 새벽 3시반에 집에서 나와서 한국 시간으로 2일 저녁 7시경에 한국에 들어왔다.

캐나다에서 아이를 가정 보육했는데 지금은 한국의 장점 중 한가지인 미취학 아동의 보육시스템의 혜택을 톡톡이 보고 있다. 만 4세인 아이는 난생 처음 어린이집을 경험하고 있다. 애도 재밌어 하는 것 같지만 이 상황을 가장 누리는 이는 바로 나다.

사람이 사는 곳 어디든 모든 게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없고 장단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보육 시스템이 아주 잘 돼있다. 정부 지원 덕분에 개인이 부담하는 보육료가 아주 낮은 수준인데다 급식이 나온다. 북미와 유럽은 미취학 아동을 보육시설에 보내면 한국의 영어유치원에 준하는 보육료를 지불해야하고 도시락도 싸서 보내야 한다. 도시락은 아이가 학교에 다녀도 계속 보내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는 먹는 게 넘쳐난다. 내가 한국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음식이었는데 너무 먹을 게 많아서 여기서는 라면 먹을 일이 없다. 게다가 간편식은 어찌나 잘돼있는지 캐나다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여기서 간편식을 이용한 식사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캐나다에 살면서 삼시세끼가 너무 힘들어서 남편에게 한국에 가면 밥을 안할 거라고 여러 번 예고를 했었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평균 하루 한끼 정도 차리고 있는데 밀키트 등을 활용하다 보니 쉬워도 너무 쉽다. 한국에서는 일을 안해서 그렇기도 하고. 결론적으로 한국에 와서 감사하게도 이곳의 장점만을 많이 누리고 있다.

아이도 처음 경험하는 보육기관에 금세 적응해 가고 있다. 작년까진 내게는 한국어로 답을 곧잘 했었는데 내가 일하는 동안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그런지 올해부터는 내가 한국어로 말을 걸어도 영어로만 대답을 했었다. 어린이집을 다닌 후로 눈에 띌 정도로 한국어가 늘었다. 우린 캐나다에 살기 때문에 아이의 모국어가 영어이긴 해도 내 국적도 물려받았으니 한국어도 잘 구사하길 바랐고 그것이 보육기관에 보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였는데 내 기대보다도 훨씬 잘 적응해가고 있다. 다만,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온갖 질병을 옮아 오고 옮기듯이 어젯밤부터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픈 상태라 오늘 아침에 병원에 다녀왔고 A형 독감 진단을 받았다.

너무나도 그리웠던 친구들도 지난 2주 동안 집중적으로 만났다.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삼십년을 친자매와 같이 지내는 친구 그룹이 있는데 그 친구들을 2주 동안 다섯번이나 봤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기꺼이 나를 환영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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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로 돌아왔다  (2) 2024.07.27
Posted by nomad_e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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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얘기지만 9월이 시작될 쯤 번아웃이 왔던가보다.
 
속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천불이 나는데 무기력하고 한마디로 지쳤다. 10월이 끝나가는 시점인 지금은 나아졌지만 완전히 회복이 되지는 않았다. 이런 와중에 한국에 가기로 결정하고 티켓을 구매했고 일도 옮겼다.
 
지금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주유소이자 간이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게를 시작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오가는 손님이 얼마나 되는지 손님 중 근처에 사는 사람의 비중과 고속도로에서 유입되는 사람의 비중을 보려는 의도로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괜찮은 결정이었다. 이전 가게를 그만 두고 무기력과 번아웃이 나아진 것도 있다.
 
이전 가게에 비하면 많이 바쁘지 않고 일이 편하고 걸어서 출퇴근이 되니까 네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가 가진 선택지 중에서는 최선이다.
 
그래서 내 인생 첫 가게(베이커리)는 우리 동네에서 시작하기로 결정했고 한국에 방문하는 기간 동안 제빵학원에서 좀 더 배우고 캐나다에 돌아오는 대로 작년에 길 건너편에 사둔 집을 고쳐서 베이커리 카페로 만들 계획이다. 제빵사로 일했을 때 제과만 해서 빵 반죽을 해본 적이 없다.
 
자기 관리가 잘 되는 유형이 아닌 관계로 여기에 다짐처럼 적어놓는 거다.
 
못해도 일주일에 한번은 개업을 준비하는 기록을 남겨두면 나중에 가게를 열고 두고두고 읽으면 나에게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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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수업  (0) 2024.01.17
Posted by nomad_e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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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 뭐가 싫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면 그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20대 30대에는 일을 그만 둘 때마다 마무리가 부드럽게 안됐다. 지랄 맞은 성질 탓에 일을 그만 둘 때면 다신 안볼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속에 쌓아둔 말을 독하게 쏟아놓는 것도 잦았다.

8월 20일에 몸이 많이 아팠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을 나간 뒤부터 인생에 회의가 와서 그런건지 아님 그 다음주에 아파서 못나온 동료를 두고 관리자들이 뒷담화하는 걸 들은 뒤부터인건지 그 무렵부터 이 가게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간사하지. 내가 일을 구할 무렵에 사람을 못구해서 매니저가 힘들었었다는 얘기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여러번 들었는데 그 후로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투입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근무시간을 쪼개기 시작하는거다. 우리집에서 일하던 데까지 차로 왕복 한시간이 걸리는데 세시간 근무하자고 거기까지 가는 게 얼마나 낭비인가.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도시와 도시 중간 어드매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최소 차로 20분 이상 거리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보다 휘발유값이 비싼 지금 자기 가게에 이렇게까지 와서 일하는 사람들에 고마움을 모른다는 게 일단 괘씸하더라. 물론 스케줄을 뭣같이 짜는 게 매니저의 의지는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지난주 토요일에 일 다녀오는 길에 우리 동네에 딱 하나 있는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놓고 왔고 지난 일요일에 거기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2년전에 고용됐다가 코로나 백신을 안맞았다는 이유로 일을 못하게 된 곳이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데다가 매일은 아니지만 오전 근무가 가능하다는 점이(식당은 늘 출근이 늦어 퇴근이 늦으니까 그게 힘들다) 이 곳의 장점이고 이 지역에서 가게를 할 여지도 열어둔 나로선 이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유입되는지를 보고 싶은 게 여기서 일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지난 주말부터는 일하러 갈 때마다 내 마음이 지옥이라 30분마다 시계를 보고 일하러 온 순간부터 그저 집에 갈 생각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매번 일을 나가는 게 너무 괴로웠는데 어젠 그곳에서의 마지막 근무라고 생각하고 근무하니 그렇게까지 마음이 괴롭지는 않았다. 캐나다에서 산 지 만으로 5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이곳에서 사귄 친구가 많지 않은 나로선 여기서 마음이 따뜻하고 솔직한 친구도 하나 얻었고 2월에 일을 구할 때에는 여기서 일하는 것도 필요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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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mad_e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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