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16) 첫 출근을 했다.
면접 때 매니저에게서 받은 인상이 좋았는데 역시나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좋은 느낌을 줬다. 내가 일하게 된 햄버거 가게는 메뉴를 고른 다음에 빵, 페티와 치즈, 베이컨 등의 주재료를 제외한 다른 재료와 소스는 서브웨이처럼 원하는 걸 골라서 토핑할 수 있게 한다. 토핑과 소스 종류가 각각 15가지가 넘는 것 같다.
한국에 콜드스톤이 수입 되기 직전에 미국에서 콜드스톤을 먹어본 적이 있다. 미국에 사는 사촌이 진짜 핫한 가게라며 데려갔는데 커스텀 컨셉의 매장은 본인이 어떤 재료를 고르느냐에 따라 조합이 바뀌기 때문에 취향이 확실한 경우에는 만족하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엔 니맛도 내맛도 아닐 수가 있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처럼 고객 본인이 토핑 내지 맛의 조합을 고르는 걸 부담스러워해서 취지를 못살리고 망할 수도 있다. 처음엔 커스텀 컨셉으로 가다가 이미 만들어진 조합을 여러 선택지로 주는 방법으로 바꿨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내가 일하는 가게의 얘기로 돌아가서
이 가게는 ㄱ자 모양으로 생긴 오픈 주방 한쪽에서는 햄버거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햄버거를 만드는 같은 방식으로 타코, 브리또 등의 멕시칸 음식을 만든다. 난 햄버거 쪽은 손을 안대고 멕시칸 음식을 만든다. 햄버거와 달리 그릴에서 주문과 동시에 모든 재료가 조리되는 게 아니라 밥과 고기류 블랙빈은 이미 조리된 것을 데우기만 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포지션은 아니다. 난 원래 식당 경험이 없고 한국에선 베이킹을 했었고 베이킹 하기 전엔 카페에서 주말 알바를 했었는데 지금 일은 카페 일에 더 가깝다.
우리집이 워낙 촌이라 가게까지 25분에서 30분 사이는 차를 타고 가야해서 (거리상으로는 30km가 넘는 거리) 출퇴근 길에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한국에서 경험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서빙도 베이킹도 인간 능력의 한계를 경험했었다. 물론 내가 같이 일한 사람의 됨됨이가 이런 안좋은 예를 만든 것 같지만 일주일 나가다 그만 둔 베이커리가 있었는데 내가 분명히 빵은 한번도 안 만져봤다는 거 알고 있으면서 단팥빵 등을 성형할 때 네버엔딩 갈구는 거다. 손님도 없는데 빨리 하라는 둥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요구에 화장실 갈 때도 눈치주고. 그래서 그만 둔 거였지. 게다가 최저시급도 지키지 않았다. 당시 최저시급이 5천원도 안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돈도 없으면 사람을 쓰면 안된다. 그 다음 일한 가게는 정신적 피로를 주지는 않았지만 인건비 아낀다고 하나뿐인 제빵사인 나를 체력적으로 혹사시켰다. 저가로 승부를 보는 브랜드이니 그게 그들의 수익모델이었겠지만 이런 사업은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침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어서 손가락이 접히지가 않았다. 에너자이저가 별명이었던 내가 체력적으로 딸릴 정도면 성별 구분 없이 대부분은 체력적으로 버텨낼 수 없는 일이라고 봐도 된다.
옛날 사람 인증하자는 게 아니었는데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첫 출근은 무척 순조로웠다. 사실 이러고 돈을 받아도 되는건가 싶게 하는 일이 없었다. 어제 내가 일한 시간대에 손님이 유난히 없기도 했다. 그리고 트레이닝 근무라고 해서 근무가 있는 날에 3시간에서 4시간반을 근무한다. 아이가 내가 없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돼서 다행이다. 사실 아이는 어제 내가 출근할 때 두 팔 벌려 환영하며 나를 보내줬다.ㅎㅎ 그리고 가장 맘에 드는 점은 평일엔 7시 30분에 가게 문을 닫는데 그 전부터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해서 7시 30분 정각에는 모든 직원이 가게 문 밖에 나가게 한다. 이게 가장 맘에 드는 점이다.
이변이 없는 이상 이 가게에서 다음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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